이약사 이야기 /일상다반사

나의 이야기 <1> -힐링셀프

큰마음약국 2012. 7. 23. 12:32

 

나는 지금부터 스스로를 힐링하는 작업을 할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업을 힐링셀프라고 지었다.

어찌 나만 답답하겠는가?

 

우주에는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어른들은 순리라고 하였다.

꼬이고 꼬여서 어디서 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될지 몰라서 삶에 절망한 사람들에게

나 역시 그들과 똑같이 힘들지만

드디어 그 매듭의 첫단추를 푸는 방법을 알게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제야 그 매듭의 첫단추를 풀게 되었지만

그 첫단추를 찾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혹시 누군가가 나처럼 힘들고 있다면 도움이 될까봐 용기내어 올려본다.

 

첫단추의 비밀은 순리에 있었다.

 

 

 

 

 

 

 

 

 

 

 

결국은 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나를 적나라하게 해체하는 작업을 할 것 같다.

 

나는 감정의 교류를 잘하지 못하는 부모밑에서 컸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매우 성실하시고 다정 다감하셨지만

내면의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술만 드시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매우 소심한 사람이셨다.

 

엄마의 친정은 매우 가난하였다.

결혼을 한후 엄마는 가난함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시고 평생 그것이 목표가 되어 불도저처럼 전진하셨다..

 

엄마는 이세상을 단 둘로 나누어서 보셨다.

 

이일이 돈이 드는 일이냐.돈이 안드는 일이냐..

 

돈이 드는 일은 무조건 나쁜일이고 돈이 들지 않는 일은 그럭저럭 할만한 일이셨던 것이다.

 

그런기준은 우리들 5형제의 몸에도 자연스럽게 배어들어

우리 5형제들은 매우 생활력이 강하게 자라났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모든것을 돈의 기준으로 나누어 보다보니

자식들과 감정의 교류가 전혀 안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들의 사춘기는 다들 힘들었지만

엄마와 아버지가 한번도 가정을 버린적이 없었고 매우 성실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탈선하지 않고 자라났다..

 

엄마에게 감정이라는 것은 매우 사치스러운것었다.

감정을 자칫 잘못 관리했다가는 자식들에게 휘둘리어 아이들을 대학까지 가르치지 못해 가난을 대물림할수 있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엄마의 애초 목표와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감정이라는 것은 아주 아주 걸리적거리는 것들이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하고 싶은 일이 엄마에게 어떻게 하면 통과되는지 어릴때부터 알게되었다,.

아무리 하고싶다고 말해도 엄마는 그것이 돈이드는 일이면 끄떡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장 눈치가 빠른 셋째딸이었다.

 

나는 내가 무엇이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을때 엄마보다 먼저 자기검열을 하였다.

이것이 돈이 드는 일인가 돈이 안드는 일인가?

심지어는 엄마보다도 더 철저하게 점검하여서 부모님은 나를 가장 신뢰하였고  부모님의 자랑이 되기까지 했다.

 

나는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 지를 몰라서 정말 애를 먹었다.

 

조금 뭐가 하고싶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이 돈이 드는일이라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포기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면 그것은 이미 내가 하고싶은 일이 아닌것이 되었다.

 

그것이 매우 심각한 일임을 깨닫는데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그것은 결혼생활에도 매우 큰 걸림돌이 되었지만 난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줄 모르고 살았다.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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