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깜짝 깜짝 놀랄때가 많다.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또는 감쪽같이 변형되어 나에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때다.
이를테면 내가 정리정돈을 제때 안한다는지, 아이들에게 스킨쉽이 없다던지, 음식하기에 전혀 관심도 소질도 없다던지
남편에게 무뚝뚝하다던지 할때 말이다.
우리 엄마는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늙어 가시는데.
그시절에 특별히 다른 돌파구가 없었음으로 자식 다섯명 키우는 것을 당신 팔자로 받아들이고 살림만 하셨지만
결코 살림을 즐겨하지 않으셨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변변찮던 시절 매일 매일 애들 씻기고 먹이는 것도 버거우셨을텐데
혹여 경제행위에 도움이 될 듯하면 인형눈도 꿰고 수입뜨게질도 하여 푼푼히 돈을 모으는것을 살림보다 더 가치를 두신 분이었다.
맨날 된장찌개,청국장,시금치나물에서 반찬이 벗어나지도 않았고 얼른 기본적인 살림을 후다닥 마친후에는
돈버는 일에 집중하고 계시곤 하였다.
늘어진 속옷이며 짝이 안맞는 양말등으로 우리가 타박을 해도 엄마는 묵묵부답, 니들이 알아서 견뎌라 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사근 사근 하지도 않을 뿐더러 맨날 똑같은 반찬, 지저분한 부엌, 아무옷이나 걸치고 앉아 인형눈을 꿰는 엄마가 싫어서
내가 엄마가 되면 절대 허여사(엄마의 별명)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곤했다.
그런데 본대로 배운다고 하질 않았던가.
나는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런데 내가 엄마에게 배운것은 내가 싫어하는 모습만은 아니었나보다,.
여하튼 엄마는 다섯자식을 끝까지 뒷바라지 해서 대학을 다 가르치고 다 성혼을 시키는 성실함을 보여 주셨는데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 일까 ,나도 불안정하지만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소임을 다하기위해 나름 성실한 편이다.
그리고 엄마의 투철한 절약정신을 물려받아 나역시 매우 검소한편이며
매우 생활력과 자립심이 강하게 살고 있다.
엄마는 자식들이 다 자라고 여유가 생기자 이번에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집념이 대단하여 혼자서 독학으로
바이엘을 떼고 성가를 연주하기도 하였다. 그런 배움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 나에게, 또 언니들에게 전해셔서
우리 자매들은 살림보다는 자기개발에 더 적극적이다.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나에게 딸이 둘이나 있음이 가끔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어떤식으로 사느냐가 결국은 내 딸들이 살아갈 모습임을 알기때문이다.
엄마는 이제 늙고 병들어서 할머니가 되었다.
난 엄마와 아침,저녁으로 통화하며 엄마의 일상을 공유하고 같이 늙어간다.
그러면서 엄마의 젊은 날을 가끔 회상하기도 하고 나의 늙은날을 점쳐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