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인줄 몰랐다.
난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부지런해지고 더 예뻐지고(?)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
집안일과 약국일과의 경계, 집안일에서도 남편이 해야할일과 내가 해야할일, 약국일에서는 직원이 해야할일과 내가 해야할일
등에 대한 뚜렷한 구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사는 것이 훨씬 힘들고 무거웠었다.
집안일을 하려고 하면 하루종일 약국에서 일을 하고 왔으므로 집에서는 쉬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그러니 집안일을 하는것이 좀체로 즐겁지가 않았었다.
즐거웁기는 커녕 억울할때도 많았다. 왜 여자만 이렇게 슈퍼우먼처럼 안과 밖에서 다 뛰어다녀야 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종종 남편이 미워서 부부싸움을 할때도 많았다.
그런데 나이 40이 넘어서 일까, 그동안 살아온 경험때문일까 ,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의 벽이 내 안에서 허물어 졌다.
약국일이건 집안일이건 경계를 두지 않고 그 일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설겆이를 예로 들어도 옛날에는 이일을 내가 왜 해야 하나 ,이 시간에 책을 읽으면 더 좋을텐데,또는 여자는 일생동안
설겆이를 몇번해야 하나 라는 생각들 때문에 개수대에 서있는것이 무척 힘들었었는데,,
지금은 시원한 물줄기에 맑게 씻겨서 나오는 그릇을 보면 내 마음이 개운해진다.
스님들도 출가하면 제일 먼저 하는것이 청소라고 하지 않던가.
청소를 할때도 역시 마찬가지다.
에이 이놈의 새깽이들 ,이집에 하녀가 있나 하고 투덜거릴때는 장난감 하나 제자리에 갖다놓는것이 버거워서
발로 툴툴 차고 다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냥 주어서 제자리에 갔다 놓는다.
최대한 수납하기 좋게 집안 공사를 해준 남편 덕이기도 한데, 남편 역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편안해하는것 같다.
이것은 내일이고 이것은 당신일이다 라고 경계를 지을 때는 엄청 저항하며 뺑돌거리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일을 스스로 찾아서 한다. 내가 미처 하지 못한일 또는 내가 할 수없는 일들을 말이다.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삶을 매우 유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