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약사 이야기 /일상다반사

토끼풀에 웃음짓다

큰마음약국 2009. 6. 19. 09:47

이른 아침 잠이 덜 깬 아이를 업고 마당을 나서는데 문을 열자마자 처마및 제비들이 수선하다.

어미가 올 때 마다 한꺼번에 노란 주둥이를 벌리고 어미를 부른다.

제비집 전체가 노란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제비 안녕"

딸아이의 잠이 묻은 아침인사에 일제히 와글 와글,저마다 대답이 바쁘다.

딸아이의 입모양과 제비의 입모양이 닮았다.  아 이래서 어른들이 아기들의 입을 보고 제비주둥이라고 그랬나...

벌써 여름이 되었는지 며칠 전까지 싸늘하던 바람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비낀다.

 

제 작년, 막내아이가 태어나던 해 남편이 심어준 넝쿨장미는 훌쩍 커서 엉크러진 채 가지마다

꽃을 달고 인사하고 있고 ,그  그늘에서  쑥부쟁이며 씀바귀, 민들레 토끼풀들이 사이사이 자리를 잡고 아침이슬에 단장을 하고 있다.  목을 한자나 내밀어 홀씨를 단 민들레는 여행을 떠날 적당한 바람을 기다리는 듯 햇빛과 두런거린다.

 

 모악산기슭에 터를 잡은지 어언 7년째다.

 

나는 아이들과 또 다른 세상을 만끽하고 있다.

 마당엔 거칠지만 푹신한 잔디, 애써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만발한 봄꽃들,

아침이면 새들의 지저귐으로 잠이 깨고 저녁이면 고즈넉한 대숲의 바람소리를 들어며 잠이 들었다

 모악산이 한눈에 들여다 보이게 창을 크게 낸 거실에서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송구스러울 정도로 감사하다,

 

그러나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자연을 觀 하지는 못하였다.

시골생활은 너무나 정직하여  장독대 주위만 둘러보아도 그집 사람들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어있다.

 밤이면 아이들과 별을 보며 폼 나게 인생을 이야기 하고 예쁜 텃밭을 갖는게 소원이었던 나는

 고된 노동에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비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현관에 진흙덩어리까지 같이 데려오고 꽃과 열매를 보고저 심어놓은 매화는

 두터운 외투처럼 진드기를 둘러쓰고 신음하였다. 심어놓은 고추를 따먹기 위해서는 내 키보다 더 높은

 풀들을 헤치고 가야되었다. 열심히 풀을 메고 돌아서도 또 풀인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에 갔던 큰딸 수연이가 토끼풀 꽃으로 팔찌와 목걸이를 만들어 내게 선물이라고 내미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잡초에 불과한 부스럼같은 토끼풀이 아이에게는 더없이 예쁜 보석처럼 보였나보다.

행복해하는 내모습에 아이는 신이나서 뒤안의 허투루핀 애기똥 풀이며  제비꽃,닭의 장풀 등을 꺽어다가

이름을 물어보고 방에 장식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덕분에 나도 같이 식물도감을 펴서 꽃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하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라는 싯구가 떠올라 빙그레 웃었다.

 

그러기를 몇해,,

 

 내가 애써 뽑으려 했던 풀들도 가을이 되면 수그러 들었다가 겨울이 되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봄이 되면 다시 두터운 땅을 딛고 파란싹을 틔우는 것을 보았고 여름에 활활 타올라 정점에 이르는것을 보았다.행여  철없이 가을에 돋아난 어린싹이 가을 서리에 피지도 못하고 스러져 가는것을 보고 모든것은 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온갖 잡것을 다 갖다 부어도 다 품어서 벌레며 곤충들에게 또는 꽃들에게 자양분이 되는 흙을 알게 되었다.`목화토금수` 책에서만 보던 오행의 이치를 삶에서 깨닫는 나날들이었다.

 

또 어느해인가

신문에서 몸에 좋은 쇠뜨기 풀이 농약으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처 동네 주위를

한바퀴나 돌아도 쇠뜨기 풀이 없는것이다. 밭의 잡초로 여겨 다 뽑아 버리던 쇠뜨기풀이 돈주고 사먹는 알약보다 항산화 효과가 크다니 ..어렵게 찾은 쇠뜨기를 마당한구석에 심어 주었다

이듬해 도라지밭사이로 쇠뜨기 풀이 올라왔다. 나는 한참 고민을 하였다.`도라지밭을 살릴려면 쇠뜨기를 뽑아내야 되고 쇠뜨기를 살릴려면 도라지를 뽑아 내야 한다'

그때 아하 하는 깨달음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좋은것도 나쁜것도 없다는 이치였다.

내가 어떤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나의 선택이 달라지는 것이지 무엇이 옳고 그름은 애시당초 없다는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도라지는 좋고 쇠뜨기는 나쁘다라는 나의 편견이 사라지면서 나의 시골생활은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

더불어 나의 인생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나는 다시 약국으로 돌아갔다.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약국이라는 공간이 숨이 막히게 나를 옥죈다 생각하고

도망나왔었는데 약국은 나에게 흙(土)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안의 욕망,열정,욕심,고뇌,기쁨,설움,부끄러음을 다 던질수 있는곳,그곳에서 난 잘 발효된 고운흙이 되기를

바란다.

고운흙이 되어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고 사람들의 자양분이 되어 어울려지기를 바란다.

 

마당한켠에 자리잡은 토끼풀이 저마다 방긋 웃으며 햇살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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