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약사 이야기 /일상다반사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큰마음약국 2009. 7. 28. 10:56

김선생님!

 

저희 부부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힘이 든다고 ,도와 달라고 , 아프다고 ,슬프다고,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고 ,고통스럽다고

말씀하셨지만  오후내내 선생님의 영혼은 밝고 건강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하시면서, 산책을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면서, 원래 있던 선생님의 모습이 되살아나는 장면은

기적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당신에게서 삶의 고귀함, 관대함, 강인함,열정 을  느꼈습니다.

 

말기암입니다. 당신은 의사에게 6개월을 선고받았고 120일을 살았으며 그중 하루를 저희와 함께하였습니다, 암은 당신의 대장에서 시작하여 간을 타고 뼈까지 전이 되었습니다.

 

7번에 걸친 항암제 투여로 당신의 체력은 바닥이 나버렸고 머리카락은 빠져 버렸으며

25키로의 근육이 허공으로 날라가 버렸습니다.

 

당신은 아직 하고싶은 일이 너무나 많은 한집안의 가장이고 두아이의 아빠이며 젊은 여인의 남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꼭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연도 참 신기합니다.

당신은  의약품 영업사원이고 나는 그 거래처 약사일뿐인데 당신은 몸이 아파오자  절 찾아왔습니다.

사실, 제가 해줄 수 있는것은 연민 뿐이었습니다.

당신의 절절함에 안타까움만 보탤뿐 아무것도 해줄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신이 거래처에서 반품받아온 약을 약국에 풀어놓을때 당신을 대신하여 소중하게 쓰겠다고 약속하며

이웃들에게 건낼 뿐이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또 다시 저를 찾아오지 않았다면

저는 인간의 한계를 스스로 규정지으며 무기력에 빠져 하루 하루를 보냈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다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비척 비척 걸어서 찾아오셨지만 삶에 대한 당신의 경건함에 존경을 보냅니다.

 

우리부부와 김선생님 부부 그리고 정약사,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대화의 주제는 단연  `암` 이었습니다

우리는 암에 대해 서로의 견해와 경험을 이야기하고  공통된 결론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암은 우리에게 일어난 큰 사건일 뿐이다.

암에 집중하지 말고 삶에 집중하자.

암은 원래 내 몸속에 있던것이 변이된것이므로 암을 몰아내려고 하지 말고 암과 함께 살자.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암은 커질수 밖에 없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당신은 곰곰히 생각해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하루 하루가 이렇게 감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숨쉬는 것조차도 감사합니다.

 

당신과 교감하는 동안 제 내면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약들을 부랴 부랴 챙겼습니다. 이 과정 역시 저 혼자서는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암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나에게 정약사가 있었습니다. 정약사는 암과 대체요법,영양요법에 깨어있는 친구 라 저와 많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당신과 일면식도 없지만 이러저러 사정을 이야기하니 두말도 않고 와준 고마운사람입니다. 

 

당신은 이제 8차 항암을 앞두고 있지만 맞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의사의 항암제 처방에 몸을 맞기지 않고  스스로 몸을 돌보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몸을 많이 만져주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영양요법을 공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꼭 몸이 좋아져서 더 큰 쓰임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눈을 빛내셨습니다.

같이 온 사모님이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이미  다 나은사람처럼 보인다고 좋아하셨습니다

 

구름 걸친 모악산, 실루엣이 선명한 모악산은 삶의 신비를 속삭이는듯 하였습니다.

 

당신이 혹 우리보다 조금 덜 살지도 모릅니다.

 

그게 조금 서러울지라도

 

그날 저녁 우리가 나눈 소박한 밥상, 우리가 나눈 우정, 우리가 받은 메세지는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겁니다.

 

김선생님

초대해주셔서 고맙다고 몇번이나 말씀하셨지만

사실 진심으로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좀더 세상에 쓰임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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