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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 그게 엄마 꿈이야.

큰마음약국 2020. 1. 23. 13:16



20대 초반의 어린 엄마가 쓴 글입니다.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공유합니다.







엄마, 엄마는 꿈이 뭐야? 엄마! 그게 엄마 꿈이야.



           글쓴이 : 김가은





7살 호아가 어느 날 "엄마는 꿈이 뭐야?" 하고 물어왔다. 이 말을 듣는 날이 벌써 왔구나, 싶으면서 대답이 준비되어 있음에 안도했다. "~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 시험에 합격하는 거~" 엄마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모습이 드러나는 대답에 나름 자부하며 대답했다. 내가 이렇게 괜찮은 엄마라고! 딸이 볼 때 얼마나 멋있을까 하고..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아 그런 거 말고~ 꿈 말이야 꿈!"

 

여지껏 호아를 키우면서 수 없이 고민하고 선택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고른 이 길을 호아는 꿈이 아니라 했다.

당황해서 바로 말도 못하고 "어떤 꿈? 엄마는 그게 꿈이라니까??" 하며 속으로 외쳤다 '그게 꿈이야, 인정해줘! 우리 호아한테 좋은 게 뭘까만 생각하고 수백 번도 더 고민해서 만든 꿈이라고!ㅠㅠ'

 

그 뒤로 호아의 말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서운하고, 혼란스럽고, 억울한 감정까지 들었다. 이러저러한 길을 거쳐 고른 내 선택들이, 내가 선택해 걷고 있는 이 길이, 난 꽤 만족스럽고 이제 별다른 고민 할 일이 없이 안정되었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이제 안정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딸이 나에게 꿈을 물을 때가 온 지금, 난 머리가 띵해졌다.

 

, 내 꿈이 뭘까. 드문드문 떠오를 때마다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왜 난 '엄마의 삶을 포기하지 않은'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을까? 왜 이런 표현이 생겼으며, 나 또한 이 말을 쓰고 있는 걸까? 엄마의 삶을 포기한다는 게 대체 뭘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일을 하지 않는 모든 엄마들, 전업주부들은 다 엄마의 삶을 포기한 것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요즘 같이 엄마의 삶을 응원해주는 시대는 없었다. 워킹맘들이 참 많아졌다. 엄마가 자신의 커리어를 계속 쌓아가고, 자신만의 삶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건 참 잘된 일이다. 아니 사실 자신''을 위해 배우고 일을 하는 엄마는 없다. 모든 엄마는 늘, 언제나, 자식과 가족의 행복을 생각한다.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 엄마 개인의 삶을 포기한 것이 아닌 것처럼, '직업을 가진 워킹맘들'이 엄마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 또한 아닐 것이다.

 

나의 엄마도 바쁘고 바쁜 워킹맘이였다. 엄마와 함께 한 추억들은 분명 있지만, 일상 속의 엄마의 모습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학교에 다녀오면 집은 늘 비어있었고, 엄마가 바쁘신 와중에 미리 챙겨두신 간식을 혼자 먹기도 하고, 친구들과 놀다 보면 바쁜 엄마는 늘 해가 질 무렵이나 캄캄해지고서야 집에 오셨다. 늦으시는 엄마를 기다리다 혼자 잠든 날도 많았다. 어렸을 땐 엄마가 바쁘신 게 서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일을 선택하신 엄마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엄마의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고, 일 하시며 아이를 키우시며, 집안을 건사하신게 참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우리 엄마는 정말 바쁘신 워킹맘이셨지만, 딸의 입장에서 엄마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작은 서운함들이야 있었겠지만, 감사한 마음만 남아있다.

엄마는 '엄마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셨지만, '엄마로서의 삶' 또한 멋지게 소화해주셨다.

 

나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일을 해보진 않았지만, 육아와 취업을 위한 공부를 병행하며 엄마의 삶, 엄마로서의 삶 그 중간 어딘가쯤에서 살아가고 있다. 큰 아이가 두 살 때 까지만 올인해서 아이를 돌보고 그 뒤로는 이것저것 공부하며, 학교도 다녔으니 굳이 하나로 정하자면 '엄마의 삶'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 또한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많이 떠나보냈다. 사실 나에게는 지금 내가 누리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다. 그리고 가족, 환경, 모든 것들이 내 기회를 지원하고 응원해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도,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것도 물론 힘든 일이지만, 주어지는 감사한 기회들, 모두가 응원하고 내가 yes만 하면 되는 일들을 포기한다는 것도.. 썩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고, 내 환경을 원망할 수도 없으며, 오롯이 나 혼자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 그것들을 포기하면서 생기는 기회비용들을 계속 뒤돌아보며, 후회도 하고, 대상 없는 그 어딘가에 원망도 하며, 참 많이도 울고 참 오래도 아쉬워했다.

 

누구든 어떠한 선택을 하면서도, 하고 나서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가지지 못한 것이 더 커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수 많은, 그 대단한 기회들을 제쳐두고 선택된 '엄마로서의 삶'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충분히 엄마로서의 삶에 부족함이 없을테지만)이 그 기회비용들보다 더 주목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 얼마나 대단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포기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하며 포기한 것도 많지만 주어지는 혜택도 많다. 그 혜택이 너무 달콤해서 끊을 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등원 할 때 나를 꼭 잡아주는 아이의 손, 아이가 오기 전 집안 일을 다 마친 깨끗하게 정돈된 집, 하원 할 때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말해주는 아이의 모습, 장보러 갔다가 하나만~ 하고 졸라서 사준 간식을 너 한 입, 나 한 입 나눠먹는 알콩달콩함, 뭐가 그렇게 좋은지 오후 내 깔깔깔~ 하고 웃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놀고 있는 우리 모습에 비치는 따뜻한 해질녘 노을빛, 저녁준비를 도와주는 아이의 고사리 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로운 저녁 식사, '언제 이렇게 많이 컸나' 하며 아이의 등을 쓸어주는 목욕 시간, 한 장만 더~ 하며 계속 늘어나는 자기 전 책 읽는 시간, 꿈에 괴물이 나올까 무섭다며 나를 꼭 끌어안은 조그만 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주는 행복함은 그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듯 반복되지만, 안정감을 주는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은 마음을 꽉, 가득, 넘치게 채워준다.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일들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테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는! 전업주부인 엄마가 되는 것이 참 좋다.

시간도 비교적 자유롭고 상사도 없고, 잘릴 걱정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정돈된 집을 가꾸는 청소부, 오늘의 저녁 거리를 생각해내고 가족들의 배를 든든하게 하는 요리사이자 영양사, 집안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는 우리 집 맞춤 만능 비서, 우리 가족의 행복한 시간을 담는 사진사, 아이에게는 맞춤형 개인 교사피아노를 뚱땅거리는 피아노 선생님, 같이 그림 그리는 미술 선생님, 한글도 잘 알고 책도 읽어주는 한글 선생님, 같이 달리기 시합하는 체육 선생님, 요리 준비를 부탁하는 요리 선생님, 픽업하러 다니는 개인 운전기사 등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거기에서 느끼는 보람은 얼마나 큰지, 여태 살면서 이것보다 소중한 일은 보지 못했다.

 

'쌈 마이웨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는 게 내 꿈이라고... 엄마는 꿈 안 쳐줘?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개발 해야 돼? 니들 잘났고, 다 자기 위해서 사는데 나 하나 정도는 그냥 내 식구들 위해서 살아도 되는 거 잖아. 그거 니들보다 하나도 못난 거 없잖아."

맞다. 내 식구들을 위해서 사는 거, 남들보다 못난 것 하나도 없다. 취업을 못 해서도 아니요, 돈 벌기 싫어서도 아니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이다. 행복한 가족을 보며 내가 행복하기 위한 나를 위한 일이다. 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심지어 전업주부인 엄마로 살면서 자기개발, 충분히 할 수 있다. 주부로서의 생활 자체가 자기개발일 수 있는 것이고, 틈틈히 즐기는 취미 생활, 아이들 어느 정도 키워놓고 준비하는 것들 모두가 다 자기개발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만 하고, 왠지 그 꿈이 직업으로 이어져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해야할 것만 같은, 자아실현이 가장 큰 화두가 된 이 시대에, 나는 돌고 돌아 내 꿈을 찾았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는 것,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소중한 시간을 충분히 즐기는 것.

 

호아가 다시 묻는다면 이제 당당히 대답할 수 있겠다.

 

엄마! 그게 엄마 꿈이야.”